8년간 200명 로비했다…탈북민 ‘캐나다 정착’ 이끈 이 사람

탈북민이 캐나다에서 난민으로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최초로 정부와의 협약을 이끌어낸 민간 인권 단체 ‘한보이스(HanVoice)’의 숀 정 대표 겸 상임이사는 12일 중앙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들은 더이상 북한 인민이 아니라 새로운 캐나다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캐나다의 ‘민간 난민 지원’ 프로그램 활용”

정 대표는 “북한 사람들은 (탈북 후) 중국과 동남아에 흩어져 있지만 해당 국가들에서는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며 “캐나다의 경우에는 이들도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캐나다 정부와 탈북민만을 위한 별도의 협약을 맺었다”고 소개했다.

캐나다 이민·난민시민부(IRCC)는 1979년부터 난민 민간 지원 프로그램(PSR)을 운영하고 있다. 캐나다 시민 혹은 영주권자들이 민간 차원에서 해외 난민의 국내 정착을 돕고 정부도 이 프로그램을 거친 난민을 적극 수용하는 제도다.

탈북 뒤 중국과 동남아 국가 등에 머물다 제3국으로 향하는 탈북민들에게는 사실상 선택지가 많지 않다. 탈북민의 특수한 지위를 인정해 자국에 수용하는 국가는 현재 한국과 미국 뿐이다. 다른 국가들은 일반 난민에 준해 탈북민 수용 여부를 결정하지만, 심사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한보이스의 노력으로 캐나다가 탈북민의 새로운 안정적 정착지가 될 가능성이 생긴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세계 최초로 민간 차원에서 탈북민 정착 경로를 확보한 점 역시 북한 인권운동계에서 높게 평가하는 이유다. 한보이스는 협약 직후인 지난 10월부터 이미 탈북민 수용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범 가동했다.

정 대표는 “한보이스의 시범 사업이 성공해 캐나다가 향후 탈북민의 영구적인 정착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2년동안 캐나다 정착을 원하는 최소 다섯 가족을 선정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8년간 200명 정책 입안자 만나”  

캐나다 이민난민시민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PSR을 통해 탈북민들이 캐나다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고 정착하기 위해서는 캐나다에 친척이나 후원자가 있거나, 영어나 프랑스어를 할 줄 알거나, 경제활동을 할 잠재력이 있어야 한다.

정 대표는 “이에 따라 한보이스는 캐나다 정착을 원하는 탈북민을 찾아 이들을 캐나다 내 후원자와 연결시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보이스는 특히 성범죄에 취약한 탈북 여성을 우선 순위에 둘 계획이다. 그는 “2019년 영국의 북한인권단체 KFI(Korea Future Initiative) 조사에 따르면, 탈북한 북한 여성의 약 60%가 탈북 과정에서 성매매 피해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체 탈북민의 약 80%인 여성이 성폭력 위기에 처해있고, 우리는 가장 취약한 이들부터 돕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한보이스는 12개월 동안 이들이 캐나다 사회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필요한 경우 지원 기간을 연장한다는 계획이다. 정 대표는 “탈북민이 캐나다에 온 뒤 첫 한 해동안 후원자 혹은 후원 그룹이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광범위하고 탄탄한 제도가 뒷받침돼있다”며 “캐나다에 온 탈북민들은 더 이상 북한 인민이 아닌 새로운 캐나다인(newcomer Canadians)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보이스가 탈북민이 PSR 프로그램의 주요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캐나다 정부와 별도 협약을 맺기까지는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정 대표는 “지난 2015년 총선 당시 캐나다의 집권 보수당은 탈북민 난민 수용을 위한 프로그램 마련을 약속했지만, 공교롭게도 보수당이 선거에서 패배했다”며 “우리는 이후 집권한 자유당에 다시 로비 작업 해야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8년동안 200명의 정책 입안자를 만났다“고 회고했다.

20년 전 탈북해 캐나다에 정착한 샘 김. 그는 한보이스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탈북 과정에서 고문을 견뎠고 가장으로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내야 했다"며 "우리 가족같은 사람들도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캐나다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한보이스 유튜브 캡쳐.

20년 전 탈북해 캐나다에 정착한 샘 김. 그는 한보이스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탈북 과정에서 고문을 견뎠고 가장으로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내야 했다”며 “우리 가족같은 사람들도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캐나다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한보이스 유튜브 캡쳐.

코로나19가 걸림돌…”2년 내 5가족 정착 목표”

다만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코로나19 확산세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정 대표는 “북한과 중국, 중국과 동남아시아 사이 국경이 닫혀있어서 아직 (지원 대상자를) 못 찾았고 당분간 기다리며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 북한의 엄격한 국경 봉쇄로 탈북민 자체도 크게 줄었다. 통일부에 따르면 한국으로 온 탈북민 숫자는 2019년 1047명→지난해 229명→올해 1~3분기 기준 48명이다. 미국에서도 지난달 탈북민 4명이 난민 자격으로 입국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11일 보도했는데, 이는 22개월만에 처음이었다.

정 대표는 탈북민이 성공적으로 캐나다에 도착하면 이들을 지원할 국내외 네트워크는 탄탄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한보이스는) 300명 넘는 회원과 캐나다 전역에 15개 지부가 있다”며 “프로그램 시작 후 세계 전역에서 돕겠다는 전화와 이메일을 받고 있다. 한국 국민들도 한보이스의 역사적인 프로그램에 힘을 실어달라”고 촉구했다.

이어 그는 “캐나다에는 인도주의를 중시하는 전통이 있다”며 “과거 시리아나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큰 분쟁이 발생해 난민이 대량으로 발생했을 때도 캐나다의 개인ㆍ기업ㆍ단체들이 난민 정착을 돕기 위해 돈을 모으고 지원에 나섰다”고 말했다.

또 “우리 프로그램은 세금을 쓰지 않는다. 탈북민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모금에 의해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북한 문제를 핵실험 등 안보 관련 관점에서만 보지 않고, 인권 및 인간안보 각도에서도 바라보도록 돕고자 한다”고 말했다.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