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에도 매달 천불적자 토론토 떠나기로

“시골서 찿은 성공, 더 행복해진 김용진 이옥희 부부 ①

20여년을 다니던 통신회사의 중견간부직을 그만 둔 것은 2000년 8월 8일이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쓴 것이다. 수 개월 전에 신청해 놓았던 캐나다 (독립)이민 비자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3년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회사 연락사무소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게 화근이었다. 귀국해서 살아보니 한국땅은 너무 좁고 답답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차를 몰고 몇 시간이고 달려도 끝이없는 북미대륙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 것이었다.

분당에 있는 고층 아파트에서 살면서 답답함을 견딜 수없어 용인에 있는 200평 대지의 농가주택을 구입하여 옮겨 여러가지 농작물을 재배하며 살면서 그나마 답답함을 달래곤 했으나 그것으로는 충족이 되질 않았다.

2000년 8월 17일 이사짐을 싸서 보내고 그 달 28일 아내, 아들 그리고 나 세명은 지인 (박태규)의 승합차에 올라 김포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동일 오전 11시 40분에 United Air Line에 몸을 싣고 동경 나리따 공항에서 Air Canada편으로 환승한 후 동일 저녁 6시경에 최종 목적지인 토론토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지인(조기준)의 도움을 받아 박승환 장기홍씨의 집에 도착하여 기다리던 다른 분(김양동)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임시 거처 (이동열 김진주씨 콘도)에서 캐나다에서의 첫날 밤을 맞이하였다.

▶맞벌이 해도 쩔쩔매던 토론토 생활

캐나다 도착 다음날 부터 정착을 위한 바쁜 나날이 시작되었다. 운전면허증 교환, SIN.OHIP(의료)카드.전화 신청, 아들 학교 등록, 영어 무료교육 (LINC) 등록등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 해 9월1일 임시 거소에서 Rent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당시 월세가 주차비($70)를 포함하여 $1,213이었다. 수입도 없고 가져온 돈도 많지 않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먹고 살기위해 바로 일을 찾아 나섰다. 먼저 정착한 한인들 중에 구두수선을 하는 분이 있었다. 구두수선을 배워 가게를 열면 먹고사는 데는 걱정이 없을 것이란 이야기는 솔낏했다. 그 분의 가게에서 구두수선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4개월여만에 그만두었다. 팔목 부위에 문제가 생겨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착자를 위한 정부서비스 (Access)의 도움을 받아 이력서를 작성하여 구직을 시도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인터뷰하러 오라는 데가 없었다. 캐나다 경력이 없어 그렇다고들 했다. 할 수 없어 일용직 용역회사를 통해 공장에서 시간당 $8의 단순직으로 일을 했다. 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다른 선택여지가 없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캐나다 기술자격증을 따서 취업을 다시 시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날부로 A plus라는 컴퓨터 조립 수리 기능자격증을 위한 여러권의 책을 사서 독학으로 공부하여 자격시험에 합격을 했다.

그 자격증 덕분에 2001년 6월 4일 드디어 자동차 부품 캐달로그를 제작하는 회사에 취업을 했다. 초임이 시간당 $10이었고 후에 $12로 인상되었다.

그러나 생활고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렌트비가 $1,500로 인상되고 식비 통신비 차량유지비 기타 등등 하여 월 $3,000 정도 필요했다. 아내의 그로서리 캐시어 수입 포함하여 가족 수입이 세금 공제후 월 $2,000이 조금 넘는 정도로 매월 $1,000 정도가 적자가 났다.

▶지인의 알버타 이주 권유에 정신이 번쩍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지인중에 기업이민으로 이민을 와서 밴쿠버에서부터 몬트리올까지 현지 답사를 해오던 분이 있었는 데 우리집에서 하루 저녁 머물면서 알버타주로 이주할 것을 권했다.

정신이 번쩍들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기분이었다. 그때까지는 밴쿠버와 토론토 이외 지역에서 사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그만큼 시야가 좁았던 것이다.

토론토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들은 워털루대학 기숙사에 남겨둔 채 2003년 8월 18일 오전 아내와 나 그리고 애완견과 함께 미니밴에 몸을 싣고 대륙횡단을 시작했다.

온타리오주를 통과하는 데 2박 3일이 소요되었다. 장거리이고 초행이라 하루 8시간 내외로만 운전하고 중간에 볼거리도 보아가면서 여행하였다. Highway #1을 타고 마니토바를 들어서니 망망한 대평원이 시작되었다. 차량은 많지 않은 데다 길은 반듯하고 평평하여 운전은 힘들지 않았으나 졸음과의 싸움이 힘들었다.

마니토바주 위니팩을 지나 일부 구간에서는 그야말로 손하나 까딱않고 2시간여를 직선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은 편한게 아니라 고통이었다. 어떤 타운에서는 모텔마다 빈방이 없어서 모텔 주차장에서 밤을 새기도 했다. 정확한 일정을 예측할 수 없어서 예약을 할 수 없었다.

그해 8월 23일 저녁 드디어 알버타주 수도인 에드먼톤에 도착했다. 토론토에서 알버타주 이주를 권했던 그 지인이 에드먼톤에 임시 정착하여 비지니스를 찾고 있던 터라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사진 설명: 통신회사 미국 워싱턴DC 주재원 시절 가족과 함께 뉴욕에 여행갔다)